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기이한 살인사건. 부검 결과, 혈흔에서 발견된 다량의 독버섯 성분으로 인한 정신적 장애가 불러온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실상은 다른 데에 있었고, 형사(곽도현)이 실상을 파헤치는 이야기.
초중반의 전개는 흡사 영화 '컨저링'을 떠오르게 했다. 종교적 관념에서 바라본 영적인 존재를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장치로 표현하는 부분에서 컨저링은 상당히 선전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 '곡성' 도 공포적 장치와 긴장감은 견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컨저링과 조금 달랐던 점은, 귀신이 빙의했다고 생각되는 인간들이 초인적인 힘을 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인간으로써 살아갈 때의 한계치 정도의 힘을 내었고, 그래서 그들을 강력한 '좀비' 혹은 '초월적 존재' 라고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현실성을 부여하는 장치였던 것일까. 그러나, 이야기가 후반으로 치닫았을 때 보여준 빙의한 인간의 모습은 또 달랐다. 후반에서는 머리에 농기구를 찍어 넣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뽑아버리고, 삽으로 때려도 인간을 물어뜯으려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들도 '미친 인간' 에서 '좀비'로 전락해 버린것이다. 부자연스러운 한국형 좀비물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자, 긴장감이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분명히 연출에 있어서 마이너스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성을 가장하면서도 결국은 '악마'라는 존재를 표현해서 판타지적 요소를 만들어냈다. 이에 대한 이상적인 반응은 '현실 속에서 마주하는 판타지적 존재에 대한 공포' 정도가 맞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악마라는 존재를 접한 순간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영화로 판단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의 여러 현실적인 요소들과 강렬한 가족애, 그리고 판타지적 요소가 잘 어우러졌다고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가족애는 가족애대로. 공포는 공포대로 흘러간 것 같다. 공포 속에서의 가족애를 느끼도록 충분히 표현을 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주된 '공포' 라는 감정에 가족애는 녹아있지 않은 듯 싶었다. 극중 가족애에 관한 부분은 옆에서 '공포'를 툭 툭 건드리며 방해하는 존재 정도.
극중에서 무당이 굿을 하러 왔을때, 그가 행하던 '살' 은 분명 외지인에게 향한 것처럼 보여졌다. 그러나 결말과 겹처 보면, 그가 딸아이를 좀비로 만드려고 했던 건지, 외지인에게 살을 행하려고 했던 건지 제대로 알 수가 없게 된다. 무당의 대사 중 '내가 큰 실수를 해버렸네' 라는 대목에서 보면, 처음에는 외지인의 정체를 자신의 적으로 착각하고 살을 날렸던 것이라고 판단이 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문제가 있는 건 무당은 마을에 오기 전 까지 젊은 여자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젊은 여자는 결국 형사의 가족을 지키려는 모습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무당이 마을에 도착해서 마을의 상황을 듣고, 딸아이를 만났을 때 일어나는 증상으로 '이 마을엔 나랑 같은 부류의 사람이 있다' 라는 생각을 했어야 하고, 또 그 둘의 적인 젊은 여자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이미 같은 부류라고 생각되는 외지인에게 살을 날릴 이유가 없게 된다. 그렇다고 딸아이를 좀비로 만드려고 했던 의식이라고 하기에는 살을 도와주던 수많은 사람이 있었고, 좁은 마을에서 요란한 행사를 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걸 모를 리도 없거니와, 외지인이 쓰러지던 장면과 함께 과정을 묘사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그저 돈 천만원을 벌기 위한 행세였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영화 초반 뉴스에서는 마을에서 벌어지던 살인 사건을 '독버섯 성분으로 인한 정신착란으로 살인을 저지름' 정도로 묘사가 되어있는데 후반 영화 속 뉴스에서 보면, 독버섯 성분을 포함한 식품을 유통했다고 나온다. 그렇다는건 아무래도 이 마을 '곡성' 에서만 이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자연스러운 해석이 아닌 것 같다. 마을 뿐만 아니라 식품이 유통되었다고 표현한 다른 지역에서도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죽은 사람의 사진을 모으는 무속 사이코패스인가 ? 혹은 단순히 금품을 노리는 것인가 ? 외지인이 저지르는 악행을 이용한 금품 갈취인가 ? . 극중에서 무당은 젊은 여자를 만나서 피를 토하게 된다. 그러나 일반인인 형사는 여자를 두어번 만났음에도 피를 토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건 강한 영적 능력으로 악으로 생각되는 무당을 경계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공격을 한 것인지, 혹은 무당의 악한 기운이 그보다 강한 마을의 수호신? 정도 되는 여자를 만나서 반응한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완전히 헛 무당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결국 무당의 목적은 무었이였을까.
마지막에 외지인은 자신을 '악마' 라고 소개한다. 정확히 말하면 본인이 악마라고 한 건 아니지만, 견습 신부가 동굴로 찾아갔을 때 비췄던 외지인의 모습이 사실이라면, 외지인은 악마의 모습에 가깝다. 또 그 악마는 곧 죽을 사람, 그리고 죽은 사람의 사진을 찍고 보관한다. 그런데 나중에는 황정민이 그 사진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여기서 몇가지의 전개가 떠오르는데,
1. 무속인이 악마를 만든다. 그는 서양의 네크로멘서, 동양의 부두술사 정도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것이다. 그는 전국적으로 악마를 퍼트리고, 또 그 악마가 죽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조건으로 사람들을 마음껏 죽이게끔 하는 것이다.
2. 무당과 외지인은 한 패였고, 자극적인 사건을 일으켜 무당은 굿을 해준다는 핑계로 일가족에게 금품을 갈취한다. 외지인은 인간의 피를 볼 수 있어서 좋고, 무당은 돈을 벌어서 좋고. 일석이조.
3. 무당과 외지인은 악마를 숭배하거나, 자신이 악마가 되기를 원하던 사람들이다. 일정한 수의 죽은 사람을 찍은 사진(영혼을 담는다. 정도로 생각.)을 태움으로써 악마에 가까워 질 수 있고, 그래서 죽은 사람들의 사진을 모은다.
3번이 가장 합리적인 전개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도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마지막 장면에서 형사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황정민이 그들을 카메라로 찍고나서 차안에 있는 사진함을 꺼내고 쏟는 장면이 나오는데, 쏟고 나서 쓸어담으며 비췄던 사진들이 일전에 외지인이 찍었던 사진들이였다. 둘째, 형사가 외지인을 두번째로 찾아갔을때, 일전에 벽에 걸려있던 사진들이 전부 사라졌었다. 외지인은 그것을 부엌에서 태워버렸다고 했는데, 형사가 들춰낸 잿더미에는 사진의 흔적은 없었다. 이렇게 본다면 외지인은 그동안 모았던 사진들을 태움으로써 악마에 가까워 졌다고 얘기할 수가 없게 된다. (영화 내에서 너무 빠르게 지나간 두 장면이라서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잿더미를 뒤졌을때 사진의 흔적이 아닌 것 같았고, 마지막에 떨어트린 사진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 건 다른 사람을 죽이고 모은 사진이였다기 보다는 외지인의 사진이라고 보는게 맞다고 생각되었다.)
좋은 영화인지는 모르겠다. 곡성에 대해서 아무런 내용도 접하지 않고 봤기 때문에 현실적인 내용인 줄 알았으나 판타지적인 요소가, 그것도 후반에 나와서 꽤나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충분히 현실감을 느끼며 긴장감있게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악마니 , 귀신이니. 맥이 탁 풀려버린 느낌이다. 소소한 예를 들면, 배고파서 치킨을 시켰다. 포장지를 뜯기 전부터 슬슬 새어나오는 군침도는 냄새가 점막을 자극한다. 근데 막상 뜯어보니 치킨향 치토스가 들어있는 기분 ? 처음부터 판타지에 대한 내용을 언급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나 내 실망과는 다르게 공포감 연출이나 적절했던 개그요소, 딸아이와 배우들의 연기에는 점수를 주고 싶다.